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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 이야기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Bible 2020. 6. 4. 08:59
탕자와 첫째 아들
우리는 첫째 아들인가? 둘째(탕자) 아들인가?
로마서 5장 20절 ~ 21절
로마서 5장 20절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로마서 5장 21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5장 11절 ~ 32절
누가복음 15장 11절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누가복음 15장 12절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누가복음 15장 13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누가복음 15장 14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누가복음 15장 15절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누가복음 15장 16절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누가복음 15장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누가복음 15장 18절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누가복음 15장 19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누가복음 15장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장 21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누가복음 15장 22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누가복음 15장 23절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누가복음 15장 24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25절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누가복음 15장 26절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누가복음 15장 27절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누가복음 15장 28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하대
누가복음 15장 29절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누가복음 15장 30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누가복음 15장 31절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누가복음 15장 32절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죄가 더한 곳에 더욱 은혜가 넘쳤나니'
못된 둘째 아들이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다 쓰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못 먹을 때 탕자가 자각한다. 뭘 자각하는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
그래도 염치는 있는 아들이다. 누가복음 15장 19절에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아들 자격은 잃었고 종으로라도 받아달라는 거예요. 이 탕자의 고백에 아버지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22절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으로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아버지의 의도가 뭔가요. 아들로서의 신분을 회복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종으로도 받아주시면 한이 없겠다는 둘째 아들에게 아들의 신분으로 회복시켜주시는 아버지의 은혜가 임했을 때 이 둘째 아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뭘까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그 뒷이야기는 안 나왔지만 이 둘째 아들은 죽을 때까지 은혜의 감격했지 않았을까? 종으로도 불러도 할 말이 없는 나에게. 아들로 불러주신 아버지.
이걸 보면은 탕자 비유의 큰아들의 문제가 금방나오게 된다. 큰아들은 자부심이 있었다. 난 저런 놈하고 다르다.
난 아버지 마음 아프게 한적도 없고 가출한 적도 없고 늘 옆에서 아버지를 챙겼다고 섬겼다는 자부심이 넘쳤던 큰 아들이지만 큰 아들은 문제가 뭘까요.
이 자부심에 자기 동생을 폄하하고 동생을 무시하고 결국 자기 우울감에 빠져있었습니다. 치명적인 큰아들의 문제는 그것 때문에 맨날 화가 나있는 겁니다.
큰아들 둘째 아들을 보면서 우리가 마음이 아픈 이유는 이 감격이 둘째 아들로 시작해서 맨날 화가 나있는 큰아들로 바뀌어있지 않은가?
저 작은아들이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한국교회는 이래서 문제고, 저 사람은 저러니 기분 나쁘고, 나만 생각하게 된다.
혹시 우리가 그 은혜에 감격하는 둘째 아들로 시작해서 지금 우리가 큰 아들로 변질되어있는 거 아닌가 되돌아보자.
처음 예수 믿는 분들은 감격이 많다. 설교 듣다가 손수건 꺼내서 눈물을 훔치는 때가 있었다. 여러분에게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둘째 아들의 감격이 여전히 있습니까?
아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자격 없는 나 같은걸 구원해주신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며, 어떤 사람이 나를 해하고 괴롭힐 때도 '내가 이까지 것 용서 못하랴.' 넉넉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게 은혜의 감격이 주는 순 기능이다.
여러분들은 그런 마음이 있는가. 지금은 쥐어짜도 눈물이 나오는가?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큰 아들의 마음인지 작은 아들의 마음인지 점검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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