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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계시록 숫자 666은 어떤 의미인가?
    Book 2020. 6. 20. 09:02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 666

     

    666은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 사람이 요한계시록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는 숫자가 있습니다. 바로 666입니다.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까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숫자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666에 관련하여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속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 13장 16-18절)

     

    도대체 여기에서 666의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666은 문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요? 요한계시록은 666에 대한 특징을 4가지로 설명합니다.

     

    1 짐승의 이름   2 이름의 수   3 짐승의 수   4 사람의 수

     

    위의 특성을 종합해 보면, 666이 '어떤 짐승 같은 사람의 이름을 의미하는 수'인 듯합니다. 과연 어떤 뜻이 있을까요?

     

    그전에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장르'입니다. '장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본문의 단어나 구절을 문자적 의미로 해석할 것인지,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아주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장르를 살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개가 아닌 서로 다른 세 개의 문학 장르가 섞여서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첫 번째 문학 장르는 '서신서'(1:4, 2:1, 8, 12, 18, 3:1, 7, 14)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르는 '선지서'(1:3)이고, 마지막 장르가 바로 '계시'(혹은 묵시 문학)입니다. 계시, 즉 묵시 문학의 다른 표현은 '박해 문학'입니다. 박해 가운데 놓여 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묵시 문학(박해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때 이런 묵시 문학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요한계시록도 묵시 문학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유적(상징)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묵시 문학에서도 상징을 사용할 때 뒤따르는 원칙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저자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다 알 수 있는 것을 상징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상징은 반드시 말하는 그 시점의 역사와 문화(사회), 종교, 언어적 배경에서 해석해야만 한다. 장소나 시간, 문화에서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로 돌아가, 그 당시에는 그 상징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해석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의 666은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전에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히브리어는 한글처럼 숫자를 표현하는 기호가 없다. 그래서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숫자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의 첫 번째 자음은 1, 두 번째 자음은 2, 세 번째 자음은 3을 의미하도록 적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단어를 들을 때, 그 단어의 원래 의미와 함께 어떤 숫자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예가 있는데 숫자 '하나', 이 단어는 숫자 1과 동시에 사람 이름 (김하나) 또는 은행 이름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듯 히브리어만의 독특한 표기 방식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시고 666도 마찬가지입니다. 666을 들을 때 유대인들은 숫자와 함께 특정 인물의 이름을 듣게 됩니다. 666 = 이게 누구의 이름일까요? 바로 로마의 황제이자 지독한 기독교 탄압자인 'Neo Caesar'(네로 시저)입니다.

     

    네로의 이름이 나타내는 수가 바로 666입니다. (폼페이의 벽화에 기록된 글에도, "나는 545인 여자를 사랑한다"라는 말이 발견되었습니다.) AD 64년에 로마 대화재 때문에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박해를 가하자, 그때부터 네로 황제의 이름을 빗대어 666이란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666을 조심해, 666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그리고 이 표현은 네로 황제가 AD 68년에 죽은 이후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대상에 대한 표현으로 계속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깐 666은 바코드가 아닙니다. 바코드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로 판가름 나는 문제입니다. 분명하게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은 바코드 따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이지웅 목사님의 책 '말씀을 읽다'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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