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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
    Bible 2023. 7. 26. 11:48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

     

    (비상식적이며 비효율적이며 상상이상의 사랑,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12장 1~8

     

    1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2절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식탁에서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었다.

     

    3절 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절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6(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 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7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8절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

     

     

    방금 우리가 읽은 본문 1장 전인 요한복음 11장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가 나사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시니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가 열렸습니다. 아마 나사로의 부활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환영과 감사가 그곳 가운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듯이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매우 값진 이 향유는 여러분들도 알듯이 300 데나리온, 1년 노동자의 품삯, 1년 연봉이 되겠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 유다의 반응입니다.

     

    유다의 반응은 5~6절에 있습니다. 유다는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왜 낭비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6절에 유다는 어떤 사람이냐고 말하면 도둑이라 돈 자루를 맡았지만 거기에 든 돈을 훔치는 사람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유다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귀히 쓰일 수 있다는 이런 유다의 표현은, 어쩌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값 비싼 것을 한 번에 허비하는 것보다 그것을 팔아 더 유용하고 가치 있는 일에 쓰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런 합리적 생각, 효율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나오는 것처럼 유다가 마리아를 비난하는 것이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유다가 자신의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썼다는 내용이 없습니다그런데 마리아의 향유사건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유다가 돈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마리아에게 향유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 향유를 사기 위해서 오랫동안 적금을 해서 차곡차곡 마련한 돈으로 구입했을 겁니다. 아마 이 돈을 마련하고 처음부터 예수님께 향유를 붇겠다는 목적으로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날 자신의 오빠를 살려준 예수님이, 늘 친밀하게 다가와 주시는 예수님이 그곳에 있을 때 마리아에 마음에 이것을 예수님께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결국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값진 것을 내어드렸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랑은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 사랑해 보셨죠? 사랑을 하다 보면 굉장히 효율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많이 합니다. 내가 데려다줄게 집도착하면 다시 내가 데려다줄게, 그렇게 밤새 왔다 갔다 하다가 밤을 새웁니다. 효율적인 것은 어떻게 각자 버스 타고 택시 타고 각자의 집으로 가거나 남자가 여자 집에 데려다주고 빨리 돌아와 그다음 날을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죠.

     

     

    여러분은 어떤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상상이상의 사랑을 해보셨나요?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자기 집을 가려면 거리가 멀어 버스가 자주 끊겨, 여자 친구 아파트 경비아저씨랑 친하게 지내서 경비실에서 같이 자는 거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급한 건 아니지만 여자친구 집까지 몰래 가서 아파트 입구에 필요한 물건 놔두고 다시 돌아와 카톡으로 동영상 남기고 아파트 우편물 밑에 봐봐 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놀라 하며 감동주기 위한 행동들?, 거리가 왕복 약 50킬로 되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자전거도 못 타고 겁이 많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매일같이 가서 도루주행 연습시킨다고 a, b, c, d 코스 계속 돌고, 할 수 있다. 용기 심어주고 결국 한방에 붙어서 기분 좋아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아니면 첫 소개팅에서의 만남부터 결혼 전까지의 만남. 그녀와의 만남, 데이트, 그녀와 나의 메모리, 우리의 추억을 잘 간직하여 더 나은 부부가 되기 위한 약 3년간의 데이트했던 모든 날을 기록한 일?(결혼 전까지 534번 데이트)

    여러분들도 비상식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랑을 해봤을 겁니다. 아직 못했다면 분명 비상식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상상 이상의 사랑을 받아봤을 겁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효율적이지 않고 상상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 같아요. 비단 연인에 관계뿐만 아니라 자녀를 키우다 보면, 실은 자녀로서 받았던 사랑보다, 부모로서 배우게 되는 사랑이 훨씬 많게 되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살아왔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이타적인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서 때로는 먹을 것을 포기하고, 잠을 포기하고, 또 어떤 분들은 자신의 꿈과 인생의 길을 잠시 접어둔 채 육아의 애를 쓰기도 합니다.

     

    이것은 다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위한 일들을 포기하는 것 같아요. 오늘 마리아에 모습은 다른 것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설명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리아뿐만 아니라 더 큰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베다니에서 마리아와의 만남 이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십니다. 근데 예루살렘에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 보면 말해 달라, 수배령이 떨어진 때입니다. 예수님이 예수살렘에 가시게 되면 분명 잡히실 것을 알고 계신데도 예루살렘을 향해서 나아가십니다.

     

    생각해 보면 예루살렘으로 향해가는 이 걸음은, 수치와 고난,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려 기다리는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예수님이 힘과 능력을 사용하시면 이 모든 것들을 멈추고 완전히 바꿀 수 있는데도 자신의 힘을 사용하시지 않은 채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십니다. 이것은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이 되어서 사람에게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할 수 있는지, 어떻게 보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일을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오늘 가룟유다는 참으로 지혜로운 척, 멋있는 척 하지만 말 뿐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300 데나리온의 값어치 있는 것들을 예수님께 단번에 드렸지만,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았던 사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서 자신을 돌아보고 도전하기 원합니다. 나는 유다처럼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가? 아니면 마리아처럼 자신의 값진 것을 드리며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적당히 하자. 이제 그 정도 했으면 그만하자. 또 믿음이 약해질 때도 적당하게 믿음생활하고 나의 생활을 나의 미래를 준비해야지 라는 생각도 합니다.

     

    근데 생각을 해보면 사랑이라는 말과 적당히라는 말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사랑하자? 우리 믿음의 생활은 단순히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의 지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 적당히 사랑하는 일은 우리 안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는 것은. 주님 우리가 비록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을 용기는 없지만 주님을 더 사랑하고 싶습니다.라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마리아 역시 주님을 사랑하기에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 번에 값어치 있는 것을 전부 드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계속해서 바라보고 가까이 나아가고, 우리의 것들을 기꺼이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이타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그 사랑에 깊은 관계와 교제가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기보다는 사랑하는 그 사랑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찬양

     

    주님 한 분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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